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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배 수필가 |
| ⓒ 경북문화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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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건강식품이며 영양제 같은 것을 잇달아 보내더니 오늘은 옷을 한 상자 보냈다. 먹으라고 보낸 것은 물론 병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옷도 그랬다. 병원 나들이에 간편하게 입으라며 가볍고 부드러운 바지며 점퍼 같은 것이었다.
먹을 것도 많이 있고 입을 것도 많이 있다고 해도 보양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많이 드시고, 낡은 옷은 좀 버리고 새뜻한 것으로 바꾸어 입으시란다. 아비를 살펴 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게 여겨지면서도 가슴 한자리가 떨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느 때는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간혹 무얼 부쳐와 어디 어디에 쓰라고 했지만, 병 진단을 받고부터 그 마음 씀이 더욱 잦은 것 같다. 제 어미 없이 홀로 지내고 있는 아비에 대한 연민도 있겠지만, 병을 위안하기 위한 마음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면 아비 병이 좀 나아질까 하는 염원과 함께, 별로 길지 않을 아비의 명줄에 무언가로라도 서둘러 채워 주고 싶은 속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을 그려보면 눈시울이 뜨끈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내 삶에 대해 별로 속을 졸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아이들에게 안 할 말을 했다 싶은 게 있다. 아이들이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는 말을 받아 “그래, 심한 통증이 올까 걱정이 좀 되지만, 죽고 사는 건 걱정되지 않는다. 언제 죽어도 괜찮아.”라고 한 말이다.
딴은 솔직한 심정을 말한 거지만, 아이들에게는 야속한 말로 들렸을지 모르겠다. 아비를 염려하는 저들의 마음은 살펴 주지도 않고, 살고 죽는 것을 너무 혼자만의 일로만 여기시는 것 같다고 서운해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저들 마음은 아비를 한시라도 더 살리고 싶은데, 그 마음도 모르고, 언제 죽어도 괜찮다니. 내 어찌 그리도 생각이 모자랐을까. 그래서 아이들이 놀라 몸을 보할 거리야, 몸을 두를 옷들이야 잔뜩 보내주려 한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무 해준 게 없는 것 같다. 키울 때도 물심 어느 것이든 넉넉하게 준 게 없고, 저들이 자라서 품을 벗어날 때도 힘을 보태준 것도 별로 없고,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조차 함께 겪어주지도 못했다.
그래도 저마다의 도리와 할 일을 가지고 잘 커 나오고 잘 살아주고 있다. 저들도 어느덧 반평생을 넘어서는 세월을 안고 있다.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내가 힘이 되어 준 게 없을 바에야 저들의 짐이나 되지 말아야 할 텐데, 내 이리 간난을 안고 있다.
내 ‘간난艱難’ 중에 지금 주로 겪고 있는 것은 병고다. 안 아프고 살면 좋겠지만, 누가 안 아플 수가 있는가. 지금까지는 안 아파봤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누구나 다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그 병고 끝에 설령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어찌 물리칠 수 있으랴.
불가에서는 생사일여生死一如라 하여 삶과 죽음은 원래 하나라 하지 않았는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죽음을 향해 간다.” 하고, “모든 유위법은 꿈과 환상과 물거품과 그림자 같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金剛經 第32」)”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 보면 병고가 좀 힘들긴 해도 감내해야 할 것이고, 죽음조차도 흘러가는 날과 달을 맞이하고 보내듯 천연스레 맞이하고 보내야 할 것이다. 살 만큼 산 터에, 삶이 짧아 안타까울 것도 없음에야 죽음을 맞이하지 못할 일도 없다.
그렇지만, 이런 상념이야 나의 것일 뿐, 아이들의 것은 아니다. 비록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못난 아비라 할지라도 천륜이 있음에야 어찌 아비, 어미의 죽음 쉬 보려 할까. 아이들은 제 어미 간 지 몇 해가 흘러도 아직 서러움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가고 나면 저들 나름대로는 서러움 하나를 더해야 할 것이니, 저들로서는 염려가 적지 아니할 것이다. 내 가고 난 뒤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런대로 지낼 만하게도 되겠지만, 그 세월이야 어찌 기약할 수 있으랴.
나는 어딜 가나 꼭 조그만 노트북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는데, 그것도 쇳덩어리니 아무리 작아도 무게가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먹을 것이며 입을 것을 보낸 데 이어 가벼이 메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하나 사 주겠다며 노트북 크기를 물어왔다.
아직 그거 하나쯤은 들고 다닐 힘이 있다고 해도 굳이 사 주겠단다. 그러면 그리하라 하고 크기를 재어 보냈다. 수일 내로 부치겠다 했으니 곧 당도할 것이다. 저들 딴은 이 아비의 명줄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아들이 발명한 제품을 두고 전문가들이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으로 그 성능이 세계 최초 입증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또 세계 최초의 신제품을 발표했다는 뉴스가 뜨고 있다. 그리되기 위해 얼마나 큰 고심을 했을까. 하물며 이 아비가 또 어찌 짐을 더해 주랴.
“그래, 사는 날까지는 힘을 다해 살아 보마. 너희들도 하는 일 잘해나가도록 해라.”
초연한 죽음은 잠시 접고 명 다해 살아 보기를 애쓸 일이다. 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