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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인터뷰

구미 청년작가 열전(14)]이겨레 작가 ˝한계 너머의 시선, 회화로 담다˝

안정분 기자 입력 2026.08.31 17:30 수정 2026.08.31 20:14

‘제22회 장두건미술상’ 수상 작가에 선정
개인적 경험에서 사회·역사적 공간 작업 확장
구미 미술 생태계, 인프라·인력 부족 지적

↑↑ 선산읍 작업실에서 만난 이겨레 작가
ⓒ 경북문화신문
구미시 선산읍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는 회화 작가 이겨레는 서울과 독일 등지에서 전시·연구 경험을 쌓은 뒤, 현재 고향인 구미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사람을 눈으로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해 개인과 사회가 마주한 '한계상황'을 화폭에 담아온 그는 최근 포항시립미술관 '장두건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내년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구미 청년작가 열전' 열네 번째 주인공, 이겨레 작가를 만났다.

'한계상황'을 그리는 화가
이 작가의 작업은 사람을 눈으로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생후 5개월경 선천성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사람을 명확히 알아보기 어려웠던 그는 예측하지 못한 채 맞이하는 상황에 대한 긴장감을 늘 갖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물리적·심리적인 한계상황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다"고 그는 말한다.

초기에는 시각적 지각 자체에 대한 탐구에 집중했다면, 개인전 《ground》(2017)에서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주제로, 이후 독일 라이프치히 레지던시를 거치면서는 지역의 역사와 흔적을 담는 방향으로 관심을 확장했다. 귀국 후에는 출생지인 울주의 반구대, 유년기를 보낸 구미 등 자신의 본원적 뿌리가 있는 장소를 소재로 삼았고, 개인전 《Crossing》(2021)에서는 중심과 주변 도시의 비대칭을 다뤘다. 최근에는 사회적·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과거의 기억이 현재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 경북문화신문
그림을 시작한 최초의 순간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 작가는 좋지 못한 시력 탓에 어린 시절부터 오히려 시각적으로 도전적인 일들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회상한다. 대상을 온전히 포착하기 어려울수록 그것을 그려내고 싶은 의욕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훗날 작업의 핵심 주제가 된 '한계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어쩌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린 시절부터 감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선택한 계기는 자신의 시각적 지각에 대한 자각과 회화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인식이었다. 미술 대학 입시와 학업을 이어가며 대상을 뚜렷이 인식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회화의 본질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지인의 죽음이나 사회적 참사를 목격하며 느낀 감정들이 쌓이면서 "'내가 화면 위에서 한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사회가 지닌 한계지점을 인식하는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라는 자각이 점차 쌓였고, 이러한 고민이 층층이 결합해 지금의 작업 방향성을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대표작 〈Figurative〉 연작 
↑↑ 'Figurative'(캔버스에 유채, 2020)
ⓒ 경북문화신문
↑↑ 'Figurative'(캔버스에 유채, 2025)
ⓒ 경북문화신문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으로는 2020년과 2025년 두 차례 제작한 연작 〈Figurative〉를 꼽았다. 2020년작은 김관호, 변월룡, 오지호 등 한국 근대 구상미술의 토대를 마련한 작가들을 DMZ를 배경으로 한자리에 소환해 분단과 사회 변화 속 구상회화의 역사적 흐름을 되짚었다. 2025년작은 이 탐구를 한반도 밖으로 확장해 조양규, 니콜라이 신, 한락연 등 이산(離散) 구상회화 작가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서해안의 조수 간만을 배경 삼아 고향과 타지, 정주와 이주의 경계를 은유적으로 담아낸 그는 "구상회화를 고착된 양식이 아닌 역사를 가로지르며 유동해 온 하나의 '태도'로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창작 외 시간에는 전시 관람과 역사적 공간 탐방을 즐긴다는 그는 영동 노근리평화공원, 성주 아트리움 모리, 의성 안계미술관을 추천 공간으로 꼽았다. 노근리 사건의 현장인 '쌍굴다리'가 고스란히 보존된 노근리평화공원에 대해서는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이곳은 그의 작품 〈노근리에서〉(2025)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
이 작가는 한국 근대미술사 속 인물들을 다루는 '군상(群像)' 연구와 동시대 사회 문제를 회화로 풀어내는 작업을 함께 이어갈 계획이다. 최근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자신의 작업이 '역사 기술(Historiograph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평을 들으며 "나 자신의 작업을 객관화하고 돌아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올해 포항시립미술관 '장두건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내년 6월경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그는 "한 단계 도약한 전시를 선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 작가를 위한 제언
그는 구미 미술 생태계의 과제로 '미술 전문 인력 부족'과 '창작·전시 인프라의 전문성 부족'을 꼽았다. 이를 위해 지역 미술 정책을 총괄할 공립미술관(헤드쿼터) 건립, 구미문화예술회관 등 기존 공간에 전문 큐레이터 복수 배치, 레지던시 등 창작 환경의 실질적 개선을 제안했다. 특히 현재 구미청년상상마루 레지던시는 일부 작업실에 창문이 없고 수면 공간도 부족해 실력 있는 외지 작가를 끌어들이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하며 이런 공간을 창문이 있는 작업실과 합치거나 수장고·큐레이터 사무실 등으로 용도를 바꾸는 등 인간적인 창작 환경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력 있는 작가와 교류할수록 지역 작가의 역량도 함께 성장한다"며, 정책 입안자들에게 "내 자녀가 이곳에서 2년간 매일 작업할 수 있는가를 상상해 달라"고 당부했다.
↑↑ 선산읍 작업실에서 만난 이겨레 작가
ⓒ 경북문화신문
↑↑ '슈피너라이의 한 작업실'(캔버스에 유채, 2017)
ⓒ 경북문화신문
↑↑ '구미의 한 미술관'(캔버스에 유채, 2022)
ⓒ 경북문화신문


<이겨레 작가 주요 이력>
-학력
서울대학교 서양회화과 및 동대학원서양화 전공) 졸업

-개인전
ground (예술공간 수애뇨 339, 서울, 2017)
Crossing (예술공간 수애뇨 339, 서울, 2021)
한밤의 긴 이야기 (구미시문화예술회관, 구미, 2025)
Historiography of Art (디스코스 온 아트, 서울, 2026) 외 다수

-단체전
2012년도 우수대학원생 특별전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2012)
제2회 포스코미술관 신진작가 공모전 - The Great Artist (포스코미술관, 2015
PALETTE (소다미술관 / 화성, 2023)
베어크샤우(Werkschau, 라이프치히, 독일, 2018)
베슈테혼파크(Bestehornpark, 아셔스레벤, 독일, 2021) 외 다수

-레지던시
2021 아셔스레벤 국제 여름 레지던시 (아셔스레벤 / 독일)
2018 모하창작스튜디오 (울산)
2017 - 2018 LIA - 라이프치히 국제 시각예술 프로그램 (라이프치히 / 독일)

-수상 및 선정
2015 포스코미술관 - The Great Artist, 본선 (서울)
2021 시각예술 도록·자료 번역지원 사업 선정 (예술경영지원센터)
2022 경북문화재단 청년예술인 발굴지원사업 선정
2026 K-Art 청년 창작자 지원 선정
2026 제22회 장두건미술상(포항시립미술관,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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